인생 선배라기엔 부끄럽지만, 당신이 겪어온 그 복잡하고 쓰라린 감정들이 글 너머로 고스란히 느껴져서 꼭 답장을 해주고 싶었어요. 혼자가 편하다가도 문득 사무치게 외로워지는 그 마음, 정말 잘 알죠.
먼저, 이 모든 상황이 단순히 당신의 '정 없고 차가운 성격 탓'이라고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성격이 관계에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당신의 글을 찬찬히 읽어보면 문제는 훨씬 더 복잡하고, 또 당신 잘못만은 아니라는 게 명확히 보이거든요.
당신은 잘못 살고 있는 게 아닙니다. '진짜'를 찾고 있는 겁니다.
당신이 겪은 일들을 보세요.
나의 사회적 지위나 인기에 따라 태도가 바뀌는 사람들
겹지인 눈치 보느라 스토리도 못 올리겠다는 '친구'
자신들이 돋보이려고 나를 이용하는 것 같은 느낌
이건 당신이 사람을 잘못 만난 게 아니라, '사람'이라는 존재의 씁쓸한 단면을 너무 이른 나이에 너무 깊게 봐버린 거예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관계에 현타가 오는 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오히려 그런 얄팍한 관계에 환멸을 느끼고 "이건 아니야"라며 손절을 택한 당신의 선택은, 당신이 얼마나 '진짜 관계'에 대한 갈증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겉친구'가 많았던 고등학생 때, 당신은 "지쳤다"고 했어요. 왜 지쳤을까요? 당신의 말처럼, 당신의 본래 성격과는 다른 모습을 '노력하고 애써서' 유지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건 진짜 당신의 모습이 아니었으니, 지치는 게 당연하죠.
지금 당신이 느끼는 외로움은, 과거의 그 북적거림이 그리워서가 아니라, 그 많던 사람들 중에 '진짜 내 편'은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오는 고통에 가깝습니다. 이건 당신이 잘못 살아서가 아니라, 옥석을 가려내는 과정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성장통입니다.
관계의 '양'에서 '질'로 넘어가는 과도기
많은 사람들이 성인이 되면서 당신과 비슷한 과정을 겪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그저 같은 공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관계가 맺어지죠. 하지만 각자의 삶의 무대가 달라지는 성인이 되면, 관계는 저절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이때부터 진짜 '선택과 집중'이 시작되는 거예요.
당신은 지금 그 과도기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홧김에 단절했다고 후회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건 당신의 무의식이 더 이상 가짜 관계에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다고 보낸 신호였을 겁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과거의 나를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내가 그 친구들을 끊어냈기 때문인가" 하는 후회, 그만해도 괜찮습니다. 그 선택이 있었기에 당신은 '가짜 관계'가 얼마나 허무한지 알게 됐고, '진짜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겁니다. 그건 실수가 아니라 배움이었습니다.
2. '나'라는 사람을 먼저 인정해주세요.
"깊게 친해지기 어렵고, 정 많지 않고, 차갑고 매정한" 당신의 성격. 그걸 억지로 바꾸려고 애쓰지 마세요. 세상에는 당신처럼 신중하고, 아무에게나 마음을 쉽게 열지 않으며, 독립적인 사람을 오히려 더 깊이 신뢰하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당신의 그 '차가움'은 어쩌면 아무에게나 휘둘리지 않는 '단단함'일 수 있고, 그 '정 없음'은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지 않는 '현명함'일 수도 있습니다.
3. 새로운 관계는 '밖'이 아니라 '안'에서 찾아보세요.
예전처럼 밖에서 어울리며 친구를 사귀는 방식이 지치고, 돈도 부담된다면 이제는 다른 방법을 찾아볼 때입니다. 당신의 '관심사' 안에서 관계를 맺어보는 겁니다.
독서 모임, 영화 감상 모임, 글쓰기 모임처럼 조금은 정적인 활동
등산, 러닝, 자전거 같은 혼자서도 즐길 수 있지만 함께 할 때 시너지가 나는 운동 동호회
혹은 특정 분야를 배우는 학원이나 스터디
이런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당신의 '사회적 지위'나 '인기'가 아니라, '공통의 관심사'라는 훨씬 더 단단한 연결고리로 관계를 시작하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대화할 거리가 생기고, 당신이 굳이 생글생글 웃으며 애쓰지 않아도 편안한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4. 외로움과 친구가 되어보세요.
외로움은 무조건 나쁜 감정이 아닙니다. 외로울 때 우리는 비로소 '나는 어떤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가'를 깊이 생각하게 되거든요. 지금처럼 가끔 외로움이 찾아올 때, 억지로 사람을 찾아 연락하기보다는 "아, 내가 지금 누군가와 깊은 유대감을 나누고 싶구나" 라고 스스로의 마음을 읽어주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그리고 그 시간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탐구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당신은 지금 인간관계의 리셋 버튼을 누르고, 새로운 운영체제를 설치하는 중입니다. 당연히 버벅거리고, 때로는 오류 메시지가 뜨는 것처럼 외로움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당신은 훨씬 더 안정적이고, 당신의 진짜 모습을 사랑해주는 소수의 '진짜 친구들'을 곁에 둔,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겁니다.
당신은 잘못 살고 있지 않아요. 아주 잘, 당신만의 속도로 '진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진심으로 응원할게요.